◈ 김대승 동서대 임권택 영화예술대학 학장 인터뷰
◈ 서편제·태백산맥·춘향뎐 등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
◈ 임권택 감독 권유로 현재 강단에서 교편 잡고 있어
◈ 영화학도들에게 철학·역사 등 무엇이든 읽기를 권유
◈ 책속 스토리·콘텐츠가 모두 깊이 있는 영화 만들어

김대승 동서대 임권택 영화예술대학 학장(출처 : 동서대학교)
김대승 동서대 임권택 영화예술대학 학장(출처 : 동서대학교)

부산국제영화제 특집 기사 ③

  “새로 포장한 길인가 보죠? 전에 있었던 길들의 추억이 다 이 밑에 있을 텐데. 사람들은 그 길을 잊고 이 길을 또 달리겠죠? 좋은 길이 됐음 좋겠다” 영화 가을로의 대사 중.

  영화 ‘가을로‘의 여자주인공 민주(김지수)의 마지막 대사이다. 영화 ’가을로‘는 한국 영화 최초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또한 재난의 트라우마를 여행으로 치유한다는 로드기행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평소 영화광인 본기자가 가장 아름답게 본 영화로 손꼽은 영화 ‘가을로‘의 감독이자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 사단의 핵심 멤버인 김대승 동서대 임권택 영화예술대학 학장을 만나본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동서대학교 임권택 영화예술대학 학장이자 현재 영화감독으로도 활동 중인 김대승입니다.

  Q) 현장에서의 영화감독과 영화대학 교수로서 후학양성까지 2가지를 병행하고 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 영화감독이 돼야겠다 한 것이 아닌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습니다. 또한 아버지도 영화광이셨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 토요명화 라는 프로그램을 아버지와 같이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제가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집안에서는 흔쾌히 밀어주셨습니다. 8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연극영화과 진학한다고 하면 ‘광대’ 취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인식이 없으셨죠.

  Q) 교수로서 강단에 선 계기도 궁금하다.

  제 영원한 우상이자 스승이신 임권택 감독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001년 ‘번지점프를 하다’로 감독 데뷔 후 한창 영화 찍으면서 감독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임권택 감독님이 동서대학교 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로 오시고 임권택 사단 중 항상 상주할만한 감독 출신 교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강단에 한번 서볼래?” 하고 물으신 뒤에 잠깐 고민하고 “예 알겠습니다” 한 것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Q) 잠깐 고민한 지점이 궁금하다.

  메가폰을 잡다가 교편을 잡는다는 것. 평생 안해본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임권택 감독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죠. 근데 스승이신 임권택 감독님이 권유하시는데 누가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예’라고 대답한 것 같습니다.

  Q) 서편제·춘향뎐·태백산맥·하류인생 등 영화제작에 참여하셨는데, 임권택 감독님과 인연이 깊으신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감독이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있던 시절, 우연히 월남전을 다룬 정지영 감독님의 ‘하얀전쟁’ 촬영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난 후 임권택 감독님 연출부에서 전쟁영화 촬영 경험 스태프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딱 저인 거죠. 당시 임권택 감독님은 ‘태백산맥’이라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하던 시점이었습니다.

  Q) 태백산맥이 당시 정권의 압력으로 한번 엎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빨치산 관련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치가 영화를 오로지 예술로 보지 못한 점 때문이죠. 태백산맥이 그렇게 엎어지고 나온 영화가 서편제입니다.

  Q) 그렇다면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한 첫 작품이 ‘서편제’인가?

  그렇습니다. ‘서편제’ 촬영 내내 저는 일하는 것이 아닌 배운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세대들은 모두 임권택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잖아요. 저는 임권택 감독님의 ‘만다라’, ‘길소뜸’을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이런 거장과 함께 일하는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일성 촬영감독, 이청준 원작자, 노래 김수철까지, 촬영 내내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즐거웠습니다.

  Q) 임권택 감독님과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임권택 감독님은 자신에겐 엄격하지만 남에겐 관대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영화밖에 모르시는 분입니다. 임권택 감독님은 저에게 존경의 대상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두려움의 존재입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 떠오르는 스토리가 2가지 정도 있네요. 하나는 막내 스태프로 들어가고 임권택 감독님께 처음 인사드렸는데 임 감독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잊히지 않습니다. “나는 네가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 이제껏 무엇을 했는지 관심 없다. 다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만 궁금하다. 3-4년 버텨라”라는 말이었죠. 근데 저는 그때 속으로 3-4년이 아니라 10년 버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 2번째는 어떤 에피소드인가?

  지금도 살 떨리는데, ‘서편제’ 촬영 당시 상황입니다. 제가 막내 스태프로 소품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촬영 씬은 엄마가 어디 가지 못하게 아기 발을 말뚝을 지지대 삼아 천으로 묶고 밭을 매는 장면입니다. 촬영 돌입 전 임 감독님이 점검을 하는데 아기 옷이 너무 깨끗했어요. 깨끗한 옷은 당시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때 불호령이 떨어졌죠. “김대승이 어딨어” 하구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죠. 훌륭한 영화감독은 자그마한 디테일을 치열하게 찾아내는 사람이구나 하구요.

  Q) 임권택 감독님께 또 배운 게 있나?

  영화 ‘춘향뎐’을 촬영하던 당시입니다. 그때는 막내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영화판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입니다. 임 감독님이 당시 주연이었던 조승우 씨에게 가서 이렇게 촬영할거니까 미리 디렉팅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죠. 레디 액션. 조승우 씨의 연기가 끝났습니다.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임 감독님 입만 바라보고 있었죠. 근데 대뜸 임 감독님께서 저에게 묻는 겁니다. 오케이야? NG야?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그때 무엇을 해야 할지 진땀 뺐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임 감독님께서 감독 수업을 시켜주신 거죠.

  Q) 입봉 영화가 ‘번지점프를 하다’ 인데?

  2001년 개봉작 ‘번지점프를 하다’는 저의 입봉작이자 감독으로서 여기까지 올 수 있게끔 한 작품입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인정받았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계속 영화계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생각하면 두 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바로 임권택 감독님과 아버지입니다.

  Q)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첫 번째 시사회에서는 임권택 감독님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차마 못 모시겠더라고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두 번째 시사회 때 모셨습니다. 영화를 묵묵히 보시더군요.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제가 지하 주차장까지 모셨습니다. 내려가는 내내 임 감독님께서 여기서는 뭐가 부족하고 여기서는 뭐가 안됐고 이러면 좀 더 완성도가 높아지고 하는 말을 계속 하셨습니다. 근데 저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임 감독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더 잘 되라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요. 그리고 한편으로 나에게는 참된 스승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버지 또한 시사회에서 제 영화를 보시고 “이정도면 한국영화치고는 잘 만든 영화 아니냐” 라는 소리를 하셨어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극찬의 표현이었습니다.

  Q) 본기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가을로’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영화 ‘가을로’는 아픈 자식 같은 영화입니다. 재난과 그 재난의 트라우마를 여행으로 치유하는 영화입니다. 재난과 여행이라는 두개 지점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당시 제작비 부족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행 중 느끼는 풍경 하나하나에 좀 더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영화계에 있으면서 좋은 곳이 있으면 다 메모를 해서 가을로의 여행 장소로 구현했습니다.

  Q) 영화 ‘조선마술사’ 이후로 차기작이 없다. 차기작 계획이 있는가?

  영화감독은 항상 현장의 갈증이 있습니다. 차기작은 항상 염두하고 있습니다. 다 말씀을 못 드리지만 ‘조선마술사’ 이후 중간 중간 엎어진 영화들도 몇 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눈은 촬영 현장에 두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영화학과 교수로서 후학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주변에 영화감독을 꿈꾸는 꿈나무들에게도 항상 강조합니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어”라고 강조합니다. 인문·사회·철학·문학·역사 등 무엇이든 많이 읽어 라고 말합니다. 책에서 스토리가 나오고 책에서 콘텐츠가 나옵니다. 그게 다 영화의 깊이로 표현됩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분들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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